[10분 세계사 흐름 잡기] 그리스 문명(2) - 아테네 민주정치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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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정

고대 그리스에서는 귀족 행정이 이루어지고있었습니다. 

즉 소수의 부자가 정치 권력을 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귀족들은 자신들의 폴리스를 지키기 위해 말과 무기를 구입하고 전쟁에 참가했습니다. 

귀족이 국방의 의무를 다함으로써 권력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평민들은 돈이 없기 때문에 무기조차도 살 수 없었기 때문에 불평 할 수 없습니다.

 

평민의 성장과 중장보병

지금까지 기사로 자동 폴리스를 지켜온 귀족들 이었지만 부유해진 평민들이 중장 보병 으로 국방에 참여하게됩니다.

그런데 이 중장보병이 성립 된 배경에는 그리스의 경제 발전이 있습니다. 

화폐를 처음으로 주조한 리디아 화폐를 사용 그리스는 경제가 발전을 향해 가속했던 것입니다.

평민들은 국방의 대가로 정치 권력을 요구하게됩니다.

 

아테네 민주 정치의 흐름

드라콘의 입법

우선 전 7c 후반 드라콘이라는 입법자가 아테네 종래의 관습법을 성문화 즉 말로 명시하고 귀족에 의한 법의 독점을 방지했습니다.

 

솔론의 금권정

그러나 귀족 정을 끝낸이 솔론의 개혁 입니다. 

포인트는 2가지, 채무 노예의 금지  재산 정치 입니다.

지금까지 그리스 화폐에 의한 경제 발전에 따라 평민을 중장 보병으로 진화하고 있었지만그 중에는 빚을 너무 갚지 못하게되고 노예로 전락하는 사람들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빚을 갚지 못하게 된 노예를 채무 노예 이라고 부르고 있는 데 이를 금지했습니다.

 

솔론은 이 채무 노예를 없애고 시민을 재산의 보유량에 따라 4 등급으로 나누어, 중장 보병으로 싸울 정도 재산이있는 것에 대해서는 참정권을 인정했습니다

이것을 재산 정치 라고합니다.

 

페이시스트라토스

그런데 재산 정치 평민의 정치 참여의 발판을 만들었지만 평민간에서 격차를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그런 소수의 부자 평민과 다수의 가난한 평민 사이의 격차는 다수의 가난한 평민에 불만을 가져 왔습니다.

불만 지나친 다수의 가난한 평민을 부추기고 정치 권력을 손에 넣은 사람이 페이시스트라토스입니다.

그는 참주정치라 불리우는 거의 독재 정치를 실시했습니다

 

그러나 독재 정치라는 이미지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그는 가난한 평민들에게는 매우 고마운 정치를 실시했습니다. 

귀족의 토지를 가난한 평민들에게 나누었습니다.

 

그런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사후 그의 아들은 엄청 정치를하고 폭군 듬뿍를 발휘 참주 정치가 종료됩니다.

 

클레이스테네스

폭군의 참주 정치에 의해 엉망이되어 버린 아테네에서 클레이스테네스가 다시는 귀족 정치와 참주 정치가 실현하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에서 혈연적 4부족 제를 폐지 하고 도편 추방제를 설치 했습니다.

 

이 제도는 나중에 유능한 인간까지 사기에 의해 추방되게 되었습니다.

이 후 페르시아와의 전쟁 중 하나 인 살라미스 해전에서 활약 한 테미스토클레스도 민중의 도편 추방에 의해 아테네에서 추방됩니다.

이처럼 민중을 유언 비어로 선동하는 데마고고스 의 출현으로 도편추방제도 막을 내리게 됩니다.

 

페르시아 전쟁

가난한 평민도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을 만한 기회가 된 것이 페르시아 전쟁입니다.

도대체 가난한 평민들은 어떤 역할로 전쟁에 참여하고 참정권을 얻었는지? 전쟁의 전체 흐름과 함께보고 갑시다.

 

페르시아 전쟁의 계기

위의 이미지는 BC4C경의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지배 영역입니다.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페르시아 사람들이 코앞에와있는 것입니다.

이오니아 지방의 밀레투스 지역의 그리스인들이 페르시아 제국에 반란을 일으 킵니다. 

장소는 터키 해안 지역입니다. 

이 반란은 곧 진압되지만,이 반란을 일으킨 그리스 사람들을 대 폴리스 아테네 가 지원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페르시아 다리우스 1세는 그리스 지역의 정복을 제시합니다

이것이 페르시아 전쟁의 시작입니다.

 

이 전쟁을 거치면서 페리오이코이 군역의 의무를 지게 되는 참정권이 없는 불완전시민과
헤일로타이 단순한 농업 노동을 시킬 예속 농민을 지배 하는 제도를 확립했습니다.

 

페르시아 전쟁에서는 대표적으로 두 전투가 손꼽히는 데요.

하나는 마라톤 전투이고 다른 하나는 살라미스 해전입니다.

그리고 살라미스 해전에서 활약 한 것이 삼단 함선을 이용한 전술입니다.

 

이 후 그리스 측에서는  페르시아의 재공격에 대비해 폴리스끼리 단결을 이루어 지지해야한다는 분위기가 고조됩니다.

그래서 아테네를 중심으로 델로스 동맹 을 전성기에는 200여개의 폴리스가 가입했습니다

이를 지도 한 아테네의 페리클레스는 장군으로 나중에 아테네의 민주 정치를 완성시킨 인물입니다

 

그가 무산 시민에게 참정권을 인정하여 아테네 민회 는 행정 및 사법의 최고 기관 지금 말하는 국회와 법원의 역할을하는 조직을 만들고, 행정, 사법의 공정성을 확립하려고했습니다.

덧붙여서 구성원은 18 세 이상 청년 남성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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