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세계사 흐름 잡기] 고대 로마 문명 (3) 팍스로마나부터 로마 제국의 몰락까지
- 학업
- 2020. 4. 7.
팍스 로마나
여기에서 역사는 단번에 이동합니다
1세기에서2 세기에 걸친 200 년의 로마는 팍스 로마나 (로마의 평화) 라고 크게 발전했습니다
1세기 네로의 기독교 박해
그런데 로마가 1 세기를 맞이했다는 것은 기독교의 시조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 한 것이기도 있습니다 (예수가 태어난 날을 기원전과 기원 후 나눈 것이 기원니까요!)
당시 신흥 종교인 기독교가 로마에서도 보급되기 시작한 로마 제 5 대 황제 네로 는 1 세기에 기독교를 탄압했습니다
네로의 죽음에서 네르바 - 안토니누스 왕조 시대 (96 ~ 180 년)이 시작됩니다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5 명입니다 (네르바 이후 4명 전원이 '누스'가 붙으므로 리드미컬하게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네르바 - 안토니누스 왕조 시대 (1) 네르바
네로의 죽음 이후 로마는 후계자로 조금 옥신각신했는데 결국 네르바가 황제로 즉위합니다
상당히 연로했기 때문에 불과 1 년 반만에 유능한 실력자 트라야누스에게 바톤이 넘어갑니다.
네르바 - 안토니누스 왕조 시대 (2) 트라야누스
트라야누스의 시대에 고대 로마는 최대 판도, 즉 지배 영역이 확대됩니다
서쪽으로는 스페인 북부 아프리카, 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까지 폭 넓은 지역입니다.
네르바 - 안토니누스 왕조 시대 (3) 하드리아누스
다음 하드리아누스 는 영국 장성을 건설합니다 .
당시 로마가 바다를 넘어 영국 장성까지 지을 정도로 힘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네요.
네르바 - 안토니누스 왕조 시대 (4) 안토니우스 피우스
그런데 이어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로마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 였다고합니다
평화이기 때문에 특히 큰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기억할 수 없습니다 웃음
네르바 - 안토니누스 왕조 시대 (5)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네르바 - 안토니누스 왕조 마지막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는 철인 황제로 불릴만큼 철학 좋아하는 황제였습니다
그는 게르만족과의 전쟁 중에 자신의 계명을 위해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로 명상록을 썼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죽은 180년에서 5현제 시대는 끝납니다
5현재 시대 이후 로마는 쇠퇴기에 들어갑니다.
로마 시민권의 확대
BC 1C에는 이탈리아 반도의 최하층 계급인 동맹 도시가 연합하여 동맹시 전쟁 을 일으켰다
이는 전체 이탈리아 시민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인정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이탈리아 반도에서 평등 한 시민권이 성립했지만 속주의 많은 사람에게는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번 시작된 자유의 흐름은 막을 수 없습니다.
속주의 경제력이 높아진 것으로 하층 시민의 발언권은 더욱 기세에지는 카라칼라 황제 는 212 년에 속주 모든 평민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했습니다.
로마의 군인 황제 시대
로마의 지배 영역에서의 내란에 대처뿐만 아니라 로마는 주변국에 위협이 되는 국가가 많이 있었습니다.
북쪽으로는 게르만족, 동쪽으로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위협 요소가 이민족에 대한 대처를 위해 군대를 파견하지 않으면 안되는 빈도가 늘어나 기 시작합니다.
각 속주에 1군단이 파견되게되면 군대에 힘이 모이게되어 황제가 군대를 제어 할 수 없게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많은 군인들이 힘을 길러 자신이 황제임을 자칭하기 시작, 황제의 난립이 일어난 것이 군인 황제 시대 입니다.
무려 50년 동안 26명의 군인 황제가 분분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에 의한 통치
이런 군인 황제 시대를 강제로 끝낸 것이 디오클레티아누스입니다.
그는 다시 권력을 군인들로부터 황제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도미나투스제에 의해 권력은 황제로 돌아 군인 황제 시대는 끝났지 만 디오 클레 티아 누스는 기독교에 큰 핍박을 일으켰습니다.
또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광대한 제국을 4분할하여 각각 황제를 두고 지배하는 제도를 시작합니다.
콘스탄티누스가 실시한 3개의 정책
디오클레티아누스는 305 년에 건강 불량에 의해 퇴위하고 콘스탄티누스가 즉위합니다
그는 세 개의 큰 정책을 실시합니다.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
1. 불과 20 년 전까지 박해하던 기독교인 이었지만 밀라노 칙령에 의해 로마 제국에서 공인의 보증을 받았습니다.
후에 다른 기사에서도 이야기하지만 기독교는 사람들의 생활이 불안정할수록 보급이 진행합니다
330년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천도
2 . 수도를 크게 천도 한 것은 역시이 시대의 경제가 동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동쪽으로는 대국 사산 왕조 페르시아가 대두하고 있으며 해안에있는 콘스탄티노플은 경제 · 문화의 요소로는 매력적이었습니다.
콜로누스의 이동을 금지하고 신분 고정
3. 지금까지 로마의 농업 경영은 라티푼디움이 기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라티푼디움의 노예가 기반이었습니다.
하지만 2~3세기 팍스 로마나라고 불릴 정도로 평화의 도래에 의해 라티푼디움이라는 농업 형태는 성립하지 않게되어 왔습니다.
그 대신 콜로나투스제 를 보급합니다.
콘스탄티누스 때부터 콜로누스들의 이동을 금지됩니다
로마 제국의 분열
375년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속주에 높은 세금에 대한 반항 등으로 로마 제국은 거칠어지고 있었습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마지막 고육지책으로 392년에 기독교를 국교화 합니다.
신자가 많은 기독교를 보호하면 로마도 아직 번영의 여지가 있을지모른다는 생각이었지만 기독교를 국교화하더라도 거친 로마 제국은 크게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불과 3년 뒤인 395년 마침내 그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열합니다.
불행히도 서로마 제국은 81년 후인 476년 게르만 용병 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