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세계사 흐름 잡기] 고대 로마 문명 (1) 로마 공화정과 평민의 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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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귀족과 평민간의 투쟁

로마는 이탈리아 중부에있는 세계에서 유명한 도시죠.

지금은 경제가 쇠퇴하고 완전히 관광지화 등이 되어 있지만 약 2000년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번성했던 지역입니다!

그런 로마이지만 원래는 작은 도시 국가 아테네 등 그리스 폴리스들보다 훨씬 늦게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대국 페르시아와 그리스에서 비하면 상당한  후발 국가 였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로마라는 하나의 국가가 성립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BC 509년경 라틴 사람에 의해 공화정으로 전환

BC 753C 경에 로마는 라틴어 인 에 의해 건국되었습니다.

그러나 곧 에트루리아 인이라는 민족에 의해 로마가 지배됩니다

잠시 에트루리아인 왕에 의한 통치가 계속되었지만 전 509 년에 에트루리아 인의 왕을 추방하고 라틴인의 공화정이 시작됩니다.

 

초기 로마 공화정에서는 파트리키(귀족)에 의한 권력 독점이 일어납니다.

원로원이라는 나라의 정책 결정 기관가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 구성원은 무려 300 명의 귀족들이었는데요.

 

콘술 (집정관)이라고 하는 임기 1년으로 2명이 선출되는 행정 · 군사의 최고 정무관과 디쿠타토루(독재관)라고 하는 국가의 비상시에 모든 권한을 장악하는 독재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반 원로원도 콘술도 디쿠타토루도 모두 파트리키에서 선정되었습니다.

이제 조금씩 비중을 넓혀나가는 것이 플레브스 (평민)입니다.
평민들은 매우 가난한 생활을하고있었습니다.

하지만 평민들은 상공업의 발전 덕분에 부자가되기 시작합니다.
부자가 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무기를 손에 넣고 중장 보병으로 전쟁에서 활약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흐름은 그리스 민주정의 발전과도 상당히 비슷하네요.

전쟁이라는 국가의 의무에 평민이 참여하게 된 것으로 플 레브 스 (평민)의 발언권이 높아집니다 .

 

BC 494년경 성산 사건

먼저 평민들이 파트리키에 저항한 사건이 성산 사건 입니다. 

로마 북동부의 성산이라는 산에 평민들이 파업을 일으킨 것입니다

당시 로마에서도 작은 도시 국가 간의 논쟁과 이민족 침입이 있었기 때문에 평민의 힘도 매우 중요한 전력이었습니다.
그래서 귀족들은 원로원도이 파업에 굴을 떨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원로원은 평민과 귀족의 신분 차이를 줄이는 절충안으로 조직된 평민회는 평민에 의해 구성된 평민회를 만들고 호민관 이라는 평민을위한 직책에 2명을 선출했습니다.

호민관의 권력은 꽤 강하고 원로원과 콘술 (집정관)의 결의에 대해 거부권을 가지고고 있었습니다.

 

 

BC 450년경 12표법 제정

BC450년경 12표법이라는 12판에 쓰여진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법이 제정됩니다

이 의미는 그리스의 드라콘의 성문법과 동일하며 기존의 귀족에 의한 규칙이있는 것처럼 않은 관습법을 문자로 나타낸 것으로, 귀족의 자의적인 법 해석을 제한 한 것입니다.

 

 

BC 367년경 리키니우스 법

다음으로 BC 367 년경에 리키니우스 법이 제정됩니다

이 법은 평민의 직책 인 호민관의 리키니우스가 제정 한 법으로 집정관 2명중 1명을 평민에서 선출하도록 규정했습니다.

 

BC 287년경 호르텐시우스 법

또한 BC287년경에는 호르텐시우스 법이 제정됩니다

호르텐시우스가 평민회의 결의가 원로원의 승인 없이도 법적인 효력을 가짐을 규정 한 것입니다.

따라서 평민 사회의 구성원 평민과 원로원의 구성원 인 귀족 사이의 정치적 평등이 달성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로마의 신분 투쟁은 일단락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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